최신글 6개
- [제주도 5주살기-에필로그] 서울의 공기 속에 남은 바다 냄새 수많은 제주살이 기록들이 있지만, ‘그 이후’를 이야기하는 글은 많지 않은 듯 했다. 제주를 떠난 뒤 한 달이 흘렀다. 서울의 가을 공기는 선선했다. 아침 일찍 동네 빵집에 빵을 사러 가는 평범한 순간, 문득 제주가 떠올랐다. 익숙한 일상이었지만, 배경과 리듬은 달랐다. 정장을 입고 출근을 서두르는 사람들, 빵빵거리는 차들, 언제 제주에 있었냐는 듯 일상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아이를 등원시키고 나면 갑자기 주어진 개인 시간에 어쩔 줄 몰라 표류하듯 시간을 보낸 날도 있었다.그럴 때면 가끔, 제주에서 찍은 사진들을 열어본다. 이상하게도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보다 ‘참 좋았지’라는 마음이 먼저 든다. 서울은 여전히 편리했다. 집 앞 백화점, 어디든 닿는 지하철, 수많은 카페, 그리고 보고 싶던 가족과.. 2025.10.20
- [제주도 5주살기] Ep Final. 돌아가는 길, 새로운 설렘 마지막 짐을 정리하고, 남은 재료로 아침을 부랴부랴 차려 먹었다. 공항에 가져갈 짐을 차에 실어두고 돌아오니, 와이프와 아이는 이미 주인집 할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왔다고 했다. “사랑한다.” 할아버지의 그 한마디가 마음을 오래 울렸다. 짧다면 짧은 이안재에서의 11일이었지만, 나눈 정은 그 이상이었다. 몸이 편찮으신 분이라 다시 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내 어린 시절의 할아버지가 떠올라 마음이 먹먹해졌다. 아마 시간이 많이 흐른 뒤, 다시 종달리에 오게 된다면 이곳의 풍경보다 먼저 떠오를 것은 그 따뜻한 마음일 것이다. 그것이 아마 ‘영원’이란 형태로 남는 기억 아닐까. 공항에는 11시 반까지 도착해야 했다. 부랴부랴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차에 올랐다. 창밖의 풍경이 점점 바뀌었다. .. 2025.10.18
- [제주도 5주살기] Ep 36. 마지막 오름, 그리고 영상편지 가득 채우고 싶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다음 날이면 떠나야 하기에, 시간의 끝자락을 붙잡고 싶은 조급함이 밀려왔다. 그래서인지 일찍 눈이 떠졌고 산책 겸 커피를 사러 나섰다. 조금 떨어진 곳이었지만, 다행히 아침 일찍 문을 연 카페였다. 창고를 개조한 공간은 와일드한 분위기였다. 빛바랜 벽과 야자수가 묘하게 어우러졌고, 큼직한 가구들이 여유롭게 놓여 있었다. 테이크아웃 잔을 들고 나오며 생각했다. ‘이제 따뜻한 커피가 어울리는 계절이 왔구나’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어떻게 하루를 보낼지 고민했다. 짐을 싸야 했고, 도서관에 반납할 책도 있었다. 선물도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하루는 온전히 채워두고 싶었다. 그래서 동선짜기에 열중하던 중, 아이의 “당근김밥 먹고 싶어!”라.. 2025.10.18
- [제주도 5주살기] Ep 35. 맑은 하늘 아래, 다시 셋 차분한 하루가 시작됐다. 와이프의 친구 가족이 떠나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숙소 안은 분주했지만, 분위기는 이상하게 고요했다. 아이들은 각자 연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 작은 손길 속에 ‘헤어짐’의 기운은 없었다. 짐을 챙긴 뒤, 삼각대를 세우고 모두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다행히 제주가 마지막 선물처럼 맑은 하늘을 내어주었다. 파란 하늘 아래에서 찍은 사진들이 오래 기억될 것 같았다. 아이들은 “내년에 또 오자!”며 서로 약속했다. 마지막 함께하는 식사는 종달리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돌문어볶음집에서 했다. 매콤한 향이 식당 안을 가득 채웠다. 와이프와 친구는 아쉬운 마음에 땅콩막걸리를 나누었고, 아이들은 ‘다음엔 한강공원에서 연을 날리자’며 헤어짐의 아쉬움을 달랬다. 그렇게 친구 가족은 공항으로, 우.. 2025.10.18
- [제주도 5주살기] Ep 34. 비 내린 하루, 경험의 문을 열자. 날씨가 좋지 않았다. 아이들과 바다에 가고 싶은 마음에 날씨 앱을 계속 새로고침했지만, 화면에는 ‘비’ 예보만 이어졌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았다. 우산을 접었다 폈다 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을 터뜨렸다. 어른의 마음속 ‘좋은 경험을 시켜주고 싶다’는 욕심이 아이들에겐 전혀 중요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저 비 오는 날의 정원, 그 순간이 아이들에겐 충분했다. 점심 무렵이 되어서야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며칠 전부터 눈여겨본 일본 가정식 식당이 있었다. 가게 앞에는 시바견 한 마리가 캠핑 의자에 앉아 비 내리는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왠지 이 식당의 분위기를 미리 말해주는 듯했다. 안으로 들어서니 이곳은 거의 일본이었다. 흘러나오는 J-Pop, 벽면의 일본 포스터, 안내판의 문구까지 90.. 2025.10.17
- [제주도 5주살기] Ep 33. 바다 위의 새벽, 그리고 아이들의 공연 유난히 일찍 눈이 떠졌다. 새벽 다섯 시. 이 곳은 동쪽이니 일출이라도 보러 가볼까 싶어 어둠을 뚫고 숙소를 나섰다. 조금 걸으니 구름이 두껍게 깔려 있었다. ‘오늘 일출 보기 힘들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온 김에 바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종달항을 지나 방망세기 불턱까지 걸었다. 썰물이라 바다 한가운데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발밑을 보니 온통 보말이었다. ‘아, 이래서 제주에는 보말 음식이 많은 거구나.’ 그제야 이해가 됐다. 일출은 일몰과 다르다. 일몰이 하루를 감싸 안는 장면이라면, 일출은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에너지가 있다. 비록 구름에 가려 완전히 드러나진 않았지만, 희미한 햇살이 바다 위로 스며드는 그 순간 벅찬 기분이 들었다. 근처 불턱 안으로 들어서니 며칠 전 만났던 할아버지의 .. 2025.10.16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