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지 않았다. 아이들과 바다에 가고 싶은 마음에 날씨 앱을 계속 새로고침했지만, 화면에는 ‘비’ 예보만 이어졌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았다. 우산을 접었다 폈다 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을 터뜨렸다. 어른의 마음속 ‘좋은 경험을 시켜주고 싶다’는 욕심이 아이들에겐 전혀 중요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저 비 오는 날의 정원, 그 순간이 아이들에겐 충분했다.

점심 무렵이 되어서야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며칠 전부터 눈여겨본 일본 가정식 식당이 있었다. 가게 앞에는 시바견 한 마리가 캠핑 의자에 앉아 비 내리는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왠지 이 식당의 분위기를 미리 말해주는 듯했다. 안으로 들어서니 이곳은 거의 일본이었다. 흘러나오는 J-Pop, 벽면의 일본 포스터, 안내판의 문구까지 90% 이상이 일본어였다. 심지어 화장실의 안내 문구까지 일본어였다.
‘이곳은 일본인이 운영하는 걸까, 아니면 철저한 컨셉의 결과일까.’ 그 생각이 스쳤다.


오랫동안 먹고 싶었던 메뉴인 제주 성게알 냉우동을 주문했다. 탱탱한 면발 위로 녹진한 성게알이 얹히고, 슴슴한 국물 속에 은근한 감칠맛이 맴돌았다. 다른 메뉴인 스키야키우동과 튀김도 모두 맛있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진 1년에 두 번씩 일본을 여행했었는데, 그 시절의 공기를 잠시나마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식당을 나설 때쯤, 비가 잦아들었다. 그래서 코난해변의 카페로 향했다. 지난번에도 들렀던 곳이다. 그네가 있고, 바다를 마주한 뷰가 좋았다. 연휴를 앞두고 사람도 늘었고, 몇몇 유명인들도 보였다. 유명인에게 아무도 다가가거나 사진을 찍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돈이 많았으면 좋겠어요’라는 밈이 문득 떠올랐다. 저들의 마음이 지금은 편할까.
조용히 가족들과 그네를 타며, 각자 서로의 가족사진을 찍어주었다. 그 평화로움이 좋았다.
날씨 앱에 표시된 비 예보는 점점 늦춰지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바다에 갈 수 있겠다.’ 월정리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긴 해변과 얕은 수심이 아이들에게 딱 맞아 보였다. 혹시 몰라 챙겨온 여벌옷 덕분에 아이들은 마음껏 파도 속으로 뛰어들었다. 아침에는 ‘이건 어른의 욕심일지도 모른다’ 생각했는데, 파도 속에서 웃는 아이들을 보니 마음이 바뀌었다. 부모의 역할은 ‘경험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지만 ‘경험의 문을 열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요즘 아이의 진로를 생각하다 보면 늘 헷갈린다. 경험을 얼마나 도와야 할까. 어디까지가 적당할까. 하지만 분명한 건, 경험해야 꿈꿀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믿음 하나로 나는 조금 더 많은 문을 열어주려 한다.

비가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황급히 차로 돌아와 아이들을 씻겼다. 미리 준비한 10L 워터백이 큰 도움이 됐다. 바다에 갈 때는 물을 담아가면 모래를 털고 씻기 좋다. 이번 여행에서 얻은 작은 노하우였다.
숙소로 돌아와 아이들을 씻기고, 지난번 들렀던 성게보말죽집으로 향했다. 여전히 감칠맛이 깊었다. 어른들은 땅콩막걸리와 톳부추전을 곁들였다. 와이프 친구의 아이는 인사성이 밝아 “잘 먹었습니다”를 잊지 않았다. 사장님이 기분 좋게 간식을 서비스로 주셨다. 우리 아이도 그 모습을 보고, 며칠 사이 “감사합니다”를 자연스럽게 말하기 시작했다. 서로에게서 배우는 힘이란 참 대단하다.

친구 가족의 마지막 밤이었다. 우리가 준비해둔 와인과 간식을 꺼내 함께했다. 아이들은 간식을 보며 ‘달달파티!’라 이름 붙이고, 또다시 공연을 시작했다. 침대를 무대 삼아 노래하고 춤추는 아이들. 어른들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었다. 내일이면 다시 셋이 남는다. 아이의 웃음소리가 줄어들까 걱정도 되었지만, 그만큼 또 새로운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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